이것은 『나단이라고 불러줘』의 주인공이 처음으로 하는 다짐의 말이다. 릴라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때의 이야기다. 몇 페이지 뒤에서는 이렇게 다짐한다. 다음부터는 절대 핸드폰을 뺏기지 않을 거야. 여전히 릴라라고 불릴 때의 이야기다. 두 다짐 사이의 거리에서, 혹은 다른 방식의 이 새로운 다짐에서 나단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직 갖지 못한 것을 만들어 가는 이야기 혹은 저 먼 어딘가에 있는 것을 찾아가는 이야기이기보다는 빼앗기지 않고 살아가는 이야기다. 자신의 물건을, 자신의 관계를, 자신의 이름을, 자신의 삶을 빼앗기지 않기로 다짐한 사람의 이야기다.
종종 사랑의 이름으로, 무언가를 빼앗아 가곤 한다. 때로는 전화기를, 때로는 성별을. 그리고는 다른 것을 쥐어준다. 휴대전화 대신 교과서를, 내가 아는 나의 성별 대신 서류에 적혀 있는 다른 성별을 말이다. 아직 사춘기니까, 아직 어리니까 하는 말들은 때로는 빼앗아가는 이유가 되고 때로는 아직은 빼앗지 않고 두는 이유가 된다. 어느 쪽이든 그것이 온전히 내 것이 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다들 여성이라고 부를, 스스로의 마음에는 들지 않는 몸을 가리는 데에서 멈추는 대신 나단은 전화기를 빼앗기지 않기로 다짐한다. 여자가 되지는 않겠다고, 혹은 부모의 인형이 되지는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 다음이 특정한 무언가가 되어야 하는 의무일 수는 없을 것이다. 원하는 만큼의, 혹은 스스로에게 필요한 만큼의 의료적, 제도적 조치로 충분하다. 나단이라고 불러줘.이렇게 말한 다음에는 있던 대로의 자신을 살아간다. 남들이 생각하는 남자의 모습에 맞추는 대신 익숙한 친구들과 익숙하게 관계 맺어 온 방식대로, 다른 이름일 때부터 쌓아 왔던 나단의 삶을. 남자라는 건 뭐야?난 이제 남자라는 확언이 아니라 이런 질문으로 세상을 대한다.
당연하게도 다짐으로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의 요구와 편견에 맞서고 끝없이 설명해야 한다. 주어진 이름에 대한 미움, 주어진 몸에 대한 미움을 둘러싸고 스스로와도 싸워야 한다. 한국보다는 훨씬 덜하다곤 해도 제도적 관문도 있다. 배운 적 없는 것을 알아내는 일 역시 쉽지 않다. 그러나 외로운 혼자만의 싸움 또한 아니다. 끝내는 그를 지지하는 가족들, 함께 해 온 친구들, 먼저 겪은 이들이 쌓아 온 지식과 제도와 기술들이 힘이 되어 준다.
나단이라고 불러줘.내 이름은 나단이라는 단호한 선언보다 어쩌면 약해 보일 이 말에는 그래서 더 큰 힘이 있을 것이다. 이름이란 내 것이지만 언제나 너와 나 사이에 있는 것이므로. 내 이름을 불러 줄 이가 있다는 것이므로. 이것은 나단의 삶이 얼마나 괴로웠는지 혹은 나단이 얼마나 강한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나단이라고 불러달라는 그 말에 우리가 어떻게 답해야 할지에 관한 이야기다.
추천 02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은 언제나 깊은 울림을 준다.
글 ·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은 언제나 깊은 울림을 준다.
이 책은 트랜스젠더 남성인 나단 몰리나가 자신으로서 살아가는 과정들을 그려내고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여성 또는 남성으로 성별이 정해지고 이에 따라 외모, 행동거지, 장난감까지 구분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회 속에서, 출생 시 성별과 다른 성별로 정체화하는 트랜스젠더가 자신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많은 장벽들을 넘어야 한다. 사춘기를 맞아 변화하는 신체에 대한 위화감, 가족과의 갈등, 주변의 시선, 의료적 조치, 법적 절차, 이러한 장벽들을 넘는 일은 결코 쉽지 않고 때로는 고통스럽지만 한편으로는 자신과 주변이 변화해나가는 모습들을 보며 점차 힘을 얻는 과정들이기도 하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나단은 호르몬, 수술 등을 통해 외모가 변해가지만 이러한 변화가 나단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나단은 자신을 남성으로 인식하지만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마초적인의 문화와는 거리를 둔다. 또한 나단은 성기수술을 받지 않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성별에 대한 인식에도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나단은 결코 여성에서 남성으로 ‘변화’하거나 ‘진짜 남성’이 된 것이 아니다. 단지 남성으로서의 자신을 당당히 드러내고 살아왔으며 또 살아갈 뿐이다.
이러한 나단의 삶은 국경을 넘어 한국의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살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 가지 차이는 존재한다. 2016년 만들어진 프랑스의 성별정정법은 의료적 조치 없이 성별정정을 가능하게 하고 있고, 따라서 나단은 성기수술 없이 남성으로서의 이름과 신분을 획득한다. 이에 비해 한국에서는 대법원 예규에 따라 성기수술을 포함한 의료적 조치를 마쳐야만 성별정정이 가능하다. 또한 대법원 예규는 성별정정을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할 것을 요구하여 트랜스젠더들이 온전한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별들도 성별이 있을까” 나단의 마지막 말처럼, 세상에서 별과 같이 빛나는 개개인들의 삶은 이분법적 성별에 따라 제한되고 구획될 수 없다. 이 책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트랜스젠더들이 자신으로서의 삶을 찾아가는 여정에 공감하기를, 나아가 그러한 여정을 가로막는 성별이분법에 의문을 던질 수 있기를 바란다.
추천 03
나단이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글 · 임유청 (텍스트 기획자, 인터뷰&레터 운영자, 퍗캐스트《까마귀의 모음: 스몰톡》진행자)
“공감과 연민은 '바로 당신'이 겪고 있는 고통을'대신' 견뎌내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감정으로부터 우러나오고, 그 고통을 견뎌내는 사람을 존경할 수 있을 때 촉발된다.”
(권김현영,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중)
"나단이라고 불러줘"는 트랜스젠더 소년의 성장기를 그린 책이다. 미리 말해두는데 이 책은 트랜스젠더를 시스젠더에게'이해'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지지 않았다. 성별불쾌감이 정확히 어떤 기분인지, 잘못된 몸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마음이 삶의 단계를 거치는 데에 얼마만큼의 어려움을 부여하는지, 크고 아픈 수술을 감내하게끔 하는지를'납득'시키려 하지 않는다.
우리의 주인공‘나단’은 쉽게 구분 지어지는 유형의 사람이 아니다. 먼저 그는‘나단’이란 자기 이름을 스스로 지었다. 대체로 보호자가 이름을 붙여주는 관습이 프랑스라고 해서 다를 바 없어, 나단에게도 부모가 붙여준 이름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나단은 여성의 몸을 가지고 있었다. 부모는 그에게 여성의 몸에 어울린다고 여겨지는 이름을 붙였었다. 나단은 자기 몸도, 부모가 붙여준 이름도 좀 이상했지만, 일단은 주변을 실망시키기도, 매번 분란을 일으키기도 싫으니까 적당히 넘어가 주기로 한다. 2차 성징이 시작된다. 이전에 느끼던 괴리감은 성별 불쾌감을 강렬하게 전환된다. 이 몸은 내가 아니다.
내 몸이 내가 아닌 기분을 시스젠더 여성이자 헤테로섹슈얼로 정체화하는 내가 이해하기는 어렵다. 내 몸에 만족해본 적은 없지만, 몸이 나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느껴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불만과 불일치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그러니 나는 나단의 감각이 느끼는 어떤 부분을 정확히 알지 못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정확히 알 수 있을 거라고도,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존재한다'는 명제는 이해나 납득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눈 앞에 있는 사람을 두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폭력은 이미 존재하는 사람을 향해 당신의 존재를 내게 이해시키라고 요구할 때 발생한다.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 즉 사회가 설정해둔 가이드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은 공동체에 해악을 끼친다는 거다. 하지만 정작 나단이 성전환을 했단 이유로 그의 동생을 따돌리고 아버지에게 혐오 발언을 쏟아내어 결국 화장실로 뛰어들어가 구토하게끔 만드는 사람들은 나단이 아니다. 사회가 설정해둔 '여성'과 '남성'의 모양과 다른 점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구분에 집착하고, 통제하려 들고, 익숙한 범주에서 벗어난 모든 걸 불편하게 느끼고, 본인이 이해할 수 없음을 인정할 바엔 차라리 상대를 차별하길 선택하는 사람들의 사회다. 그 사회가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한 사람과 그의 주변을 파괴한다. 나단은 자길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주변 사람들 때문에 때때로 분노하지만, 그 분노는 공동체가 아닌 자기 자신을 해하는데 '그친다'.
트랜스젠더 여성 변희수 하사가 명문화되지도 않은'관습적' 해석으로 인해 부당 전역을 당하게 된 일을 생각한다. "저를 포함하여 군이 트렌스젠더 군인을 받아들일 준비가 미처 되지 않았음"을 그녀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군인으로서의 자신도, 여성으로서의 자신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용감하고 위엄 있게 커밍아웃 했다. 언론은 그녀의 당당한 얼굴 대신 눈물을 참느라 잔뜩 찡그린 얼굴 사진만 앞다퉈 내보냈다. 숙명여대 법학과에 합격한 트랜스젠더 여성 신입생에게 쏟아지는 혐오 발언을 생각한다. 그녀는 남성으로 세상에 기록되었던 적이 있었다는 이유로, '여성'으로 이해될 수 없다며 평생에 걸쳐 들어도 모자랄 폭언에 노출됐다. 심지어 이미 법적으로 성별 정정을 마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대학생활에 설레기만 해도 부족할 그녀는 “마음이 너덜너덜해졌다”고 심경을 전했다 한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광범위한 폭력을 생각할수록 반대자들의 반응은 용납될 수 없다. 폭력의 피해 집단으로, 그리고 생존자로서 당당히 가해자에 맞서고 혐오와 차별 속에서 버텨온 이들이 자신이 트랜스젠더란 존재를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배제와 혐오를, 자신이 겪은 것과 똑같은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거다.
나단의 성장기는 특별하다. 변희수 하사의 상황도, 숙명여대 예비 법학도의 현재도 특별하다. 그들의 특별함은 그녀와 그가 어려움과 편견과 혐오를 예견했고 또 온몸으로 받아낸다는 점에 있다. 그러면서도 전력을 다해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좋아해주기 위한 선택을 해 나가고 있다는 점에 있다. 그들은 폭력과 마주했지만 눈을 피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이 사회가 취해야 할 태도는 배제와 차별이 아니다. 타인의 고통에 연민을 보내는 태도다. 폭력의 재생산을 거부하는 태도이며, 익명과 익숙함이란 단어 뒤에 숨어 누군가에게 상처와 어려움을 주는 건 아닌지 두려워하는 태도이다. 이곳이 존경받을 만한 사람들이 마음 놓고 의지할 수 있는 존엄한 사람들의 사회임을 증명하려는 노력이다. 사회적 존경이다.
성별과 성애에 관해서라면, 이제껏 이 사회는 그것들을 도구로 우리 삶을 제어해왔다. 몇 마디 말이면 족했다. 너의 승진은 여기까지야, 왜냐하면 여성이니까. 너의 웃음소리는 이래야만 해, 왜냐하면 남성이니까. 둘이 사귀니? 왜냐하면 너흰 여자와 남자니까. 둘이 사귄다고? 여자랑 여자가 어떻게? 여기에 기꺼이 응답하길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단이 그렇다. 그의 삶은 자신에게 적합한 새로운 질문과 답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 나 자신과 화해를 하고, 손쉽게 구분 짓고 기꺼이 차별하길 즐기는 (본인들은 자신이 즐거운 줄도 모른다) 사람들의 악의를 온전히 상대하며 나아간다. 그의 여정은 누구도 해치지 않고 누구의 삶도 파괴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생성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나단을 존경한다. 나단이 좋다. 나단이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추천 04
나단이라 불러줄래?
글 · 박에디 (인권운동가, 커뮤니T 대표,《잘하면 유쾌한 할머니가 되겠어》저자)
당신은 누군가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어떤 말을 하는가?
이름? 나이? 사는 지역? 학교? 직업?
“내 이름은 00인데, 에디라 불러주세요. 전 트랜지션 진행 중이에요.”
7년 동안 고민과 결정을 반복했던 ‘트랜스젠더 여성’이란 정체성을 갖고 살아보니, 이름이나 나이보다 내 성별정체성을 말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누군가에겐 굳이 말하지 않아도 보여지는 그 ‘성별’. 누군가에겐 낮은 문턱이, 나에겐 넘기 어려운 벽이다. 나의 소개가 끝나면 사람들은 퀴즈의 답을 찾아낸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상대방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경계, 공포, 혹은 신뢰와 진심을 드러낸다.
소위 남자는 남자답고 여자는 여자다워야한다는 사회의 성별이분법 속에서, 성별 불일치를 경험하고 있는 트랜스젠더/젠더퀴어 청소년들은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다. 그런 이들에게 “수술 안 했잖아? 근데 네가 여자/남자라고?”라는 질문은 큰 상처가 된다. 외부성기수술, 성형을 통해 사회가 요구하는 신체구조를 가져야만 정체성을 인정해주는 상황 속에서, 이들이 경험하는 젠더 디스포리아(gender dysphoria, 지정성별 혹은 젠더가 자신이 정체화하는 것과 일치하지 않기에 느끼는 괴로움)는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정해진 성별이분법에 맞춰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실시한 "성적지향·성별정체성 차별실태조사"에 따르면, 성별 불일치감을 경험하는 응답자가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신체적 폭력은 5.6배, 따돌림은 3배 가량 높게 경험했다. 띵동에 상담하러 오는 트랜스젠더 청소년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들이 성인이 된다고 하더라도 과연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서곤 한다. 교복, 두발, 화장실 또한 성별이분법으로 나뉜 학교 시스템에서 고통받고, 압박붕대 등으로 지정성별의 특징을 가리거나 숨기고, 심지어 화장실 이용이 수치스러워 집 밖에서는 아예 물을 마시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2차 성징 과정에서 원치 않는 몸의 변화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물 대신 율무차와 콩만 먹는 이들도 있다. 더 나아가 안전하지 않은 방법으로 호르몬을 복용하는 등 생존을 위한 삶이 곧 자기 학대 수준으로 흘러가고 있다. 2020년을 맞이하는 지금, 이 일들이 앞으로도 반복된다면 너무 슬프지 않을까?
이 책은 내 주변에 있을 또 다른 이름의 나단을 진심으로 만나기 위해 읽어야 할 책이다.
‘차별과 혐오 속에 살고 있는 트랜스젠더의 삶’
이 짧은 문장으로는 담을 수 없는 삶의 결들, 자신의 선택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잘 담아내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성별정체성을 고민했던 누군가의 진심을 들었을 때 ‘용기내어 말해줘서 고맙다’라는 말과 함께 그가 겪어온 고민과 혼란, 그리고 온전히 자신의 선택으로 이룬 삶에 대한 그의 열정을 느껴주길 바란다.